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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수웠던 날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소소한 삶을 찬양하는 단편들

by 살랑상아님 2012. 1. 26.

새들은페루에가서죽다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현대문학,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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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 소녀와 죽음


한순간, 일상의 현실이 우습게 여겨지고 현실을 덮고 있던 과장된 중요성이 사라지면서 이 소녀를 짓누르고 있던 집요한 무거움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사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란 없었다. 이같이 빈틈없는 추리의 명백함은 마치 무슨 정신적 태양처럼 빛을 발했다. 멜라니는 어떤 음산한 흥분에 실린 채 웃음소리가 가득 찬 대기 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 21, 미셸 투르니에, 소녀와 죽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삶의 황량한 전경 위에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벽을 세우고 시간의 고여 있는 물을 제방으로 막음으로써 그 여자는 권태의 공격에 종지부를 찍는 셈이었다. 밧줄과 의자로 구체화됨으로써 절박한 힘을 갖추게 된 죽음이 그의 현재의 삶에 비길 데 없는 밀도와 열기를 부여했다. 


- 27, 미셸 투르니에, 소녀와 죽음



[역설적인 얘기 같습니다만, 나는 그 여자가 너무 좋아서 웃다가 죽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고 젊은 의사가 말했다. 


- 41, 미셸 투르니에, 소녀와 죽음







=

소녀의 죽음을 읽고 머리에 총을 맞았다는 진부한 표현을 써보자.

죽음의 도구 앞에서 희열을 느끼다 심장마비로 죽은 그 여자,

내 어린 시절 현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죽을까"에 대한, 혹은 반항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잔혹한 속성으로 인해 나는 자주 일상적인 공간에 널부러져있는 피와 시체와 과학실의 해부된 생물들 - 지금은 근처에도 안 갈-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런 것으로 내 안의 파괴욕을 상쇄시켰었다. 


소녀가 집 안에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 마음의 위안을, 삶의 활력과 쾌감을 느꼈다는 것 역시, 


발췌한 첫 구절은 더더욱, 내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하는 - 심각하게 불경한 - 나로서는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어찌보면 내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이 주는 삶에 대한 절박함을 늘 상기시켜 줌으로써 하루를 더 멋지게 보내게 해주는 촉진제가 된다면 나쁘지 않은 취미일 듯도 싶다. 


삶의 의미와 힘을 부여해주는 그것이 모두가 같을 수는 없으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자기 자신만의 어떤 각성제, 혹은 촉진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달퐁이에게 말했듯이 이 작품 때문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무인도에 가져갈 수가 없다.





미셸 투르니에, 로빈슨 크루소의 말로



[넌 그 섬을 다시 찾았어! 넌 아마 열 번도 더 그 섬 앞으로 지났을걸. 그러나 넌 그 섬을 못 알아본 거야.] 


- 49, 미셸 투르니에, 로빈슨 크루소의 말로






=
모든 것이 변한다. 




로제 그르니에, 약간은 시들은 금발의 여자



그가 자기의 동료들과 인간 일반에 나타내는 관심은 동물원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산보객의 관심이었다. 


- 54, 로제 그르니에, 약간은 시들은 금발의 여자




=

찔려.





로제 그르니에, 카리아티드 



[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까?하고 모니크가 말했다. 저 사람들 좀 봐. 그냥 무야. 앞에도 무, 뒤에도 무. 천만다행으로 커튼이 쳐져 있지.]


- 131, 로제 그르니에, 카리아티드 





=

어떤 사람이 60살에 그 동안의 생에 대해 만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90살이 된 그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금 까지 살 줄 알았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했을 것이에요. 그 시간이 후회스러워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트위터에서 스치듯 본 이야기, 앞에 뒤에도 무는 없어 카리아티드에 갇힌 아름다운 여인아, 당신이 본 그 무는 당신을 카리아티드로 보내버린 바로 그 무야, 커튼을 열어 죽음과 현실을 직시해 


아님말고.





앙드레 도텔, 인생의 어떤 노래



그것은 그 소리가 공간을 찢는 것만 같았고 모든 사물들보다도 더욱 멀리 저 심연의 밖에까지 뻗어나가는 것 같다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 142, 앙드레 도텔, 인생의 어떤 노래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너는 왜 바닷물 속에 가서 처박혔니?….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지? 그래도 살아야 할 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도. 다포처럼, 자갈돌들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들과 함께. 새들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빛과 함께 말야. 이 망할놈의 계집애야!]


- 157, 앙드레 도텔, 인생의 어떤 노래






=

이 덜떨어진 커플이 정말 부럽네, 이 병신들아!!

내가 사실 다른 욕은 다 싫어하는데 병신이라는 욕은 자주 쓰고 좋아한다. 

그렇다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건 절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병신이라는 건 정서적 불안정과 결핍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몸이 불편하나 정신이 반듯하고 맑은 분들은 존경해 마지 않지만 

사지는 멀쩡해서 하는 짓과 사고가 덜 떨어진 인간들은 욕이라도 해줘야하는데 정신적 불구의 의미로 랄까


라며 합리화를 하지만, 어쨌든 급 반성이 되네.. 나는 왜 이 순간 반성하고 있는가 


어쨌든 도대체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할 이유따윈 없다고. 


일전에 친척 남동생이 "왜 살아야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망발을 내뱉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해줬지 

"살아야하는 이유도 모르는 주제에 설마 죽을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살아야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살아야하는거란다, 멍청아."


라고 말해놓고 가끔 나도 내가 왜사나 싶을 때가 있다. 

사랑스러운 우리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산물이기 때문이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사람들의 생을 잊지 않을 그 누군가로 남아, 

그 존재 자체로 선대의 사람들과 앞으로 존재하게 될 사람들의 중간자로서, 

비단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티끌만큼의 역사를 그 순간 눈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서 살아 있는 것일까나ㅡ 


누군가의 뱃속같은 이 우주에서 말이지, 


융털이라거나 적혈구라거나, 뭐 그런거 ㅡ 개별적으로 하나 없어도 좋지만 필요한 하나의 총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원이랄까라 


아 융털은 소모품이 아니라서 관계가 없으려나, 하지만 그 안의 하나의 세포는 될 수도 있지 


얼마나 위대해!

그 세포하나가 이 세상을,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거라고 !! 


역시 나는 대단해!!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역사의 시초부터 하늘로 날아 올라간 그 모든 수억 수만의 영혼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통곡할 만한 일이다. 얼마나 엄청난 에너지의 원천을 낭비한 것인가. 그 영혼들이 날아오르는 순간에 그들을 포착할 수 있는 발전소를 건설하기만 했더라면 이 땅 위 전체를 밝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인간은 아무것도 버릴 것 없이 완전 사용 가능한 존재로 될 것이다. 벌써 학자들은 인간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꿈들을 채취하여 전쟁과 감옥을 만들었다. 


- 163,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한 훌륭한 인간이 산출하는 이상주의는 같은 기간 동안 어떤 경찰체제의 권력을 먹여 살릴 수 있다.


- 164,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의 속에는 그 무엇인가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모든 낚시밥을 끊임없이 무는 것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삶의 심연 속에 숨어 있다가 황혼의 시간에조차도 문득 찾아와서 모든 것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그는 남몰래 믿고 있었던 것이다. 


- 169,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가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매번 그 자신을 잊게 해주는 엄청난 진정제였다.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도와주는 몸 곁의 영원.


- 170,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 여자는 아마도 무엇 때문에 그 자신이 모래언덕 위에 흘러와 낙착되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새일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설명할 수 있는 까닭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항상 한 가지 까닭이 있게 마련이니까.


- 171,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여자를 보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녀가 두 주먹으로 눈을 문지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 같은 흐느낌이었으니까.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해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 181,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인간의 영혼이란 헤아릴 길 없고 심원한 것이라니까!


- 183,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굉장히 아득하고 신기루 같은 이야기인데, 잘은 모르지만 어쩐지 인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서려있는 듯한 느낌이다.

발췌한 부분을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건 인류에 대한 비판이다. 

새들이 페루 앞 바다에서 죽는 다는 것, 어쨌든 분명 설명할 수 있는 까닭이 있게 마련이라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 해결해주는 현대의 과학, 그 비정함, 그 오만함에 찬물을 끼얹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거지,  



생각도 하지 말고 이해하려 애쓰지도 말고 

그저 "인간의 영혼이란 헤아릴 길이 없고 심원한 것이라니까!"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메시지.

아님 말고.


자연이라는 것은 정말 삶의 진정제이지, 

알겠냐 그 알량하고 오만한 과학이 해줄 수 없는 그 많은 설명 불가능한 모든 것들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에 위안과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위대한 자연이라고, 니들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데카르트를 정말 -_- 기계론적 인간관이 이 지구를 망치고 있어, 

오 지쟈스 





로맹가리, 벽



자기는 소심해서 감히 말도 못 걸었던 그 신비한 <천사>, 그런데 지금은 벽을 통해서 당신도 충분히 알 만한 형태로 어지간히도 속세의 냄새가 나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그 <천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오갔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커튼 줄을 뜯어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행동을 저질렀던 겁니다. 


- 189, 벽



그 처녀는 벌써 사망한 지 여섯 시간 된 듯 했고 죽기 전에 매우 오랫동안 몸부림친 것이 분명했습니다. … 대강만 보아도 그건 고독 ……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싫증, 그중에서도 급성이더구먼요.


- 190, 벽






=

야 일단 부딪혀, 소심하게 굴지말고, 안 되겠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사드려야지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밤의 추위, 그리고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낮시간의 저 참담할 만큼 느린 흐름, 그 속의 침묵 속에서 오로지 나의 외로움만을 위하여 우는 듯한 종달새소리, 이런 것이 기껏해야 길에서 내 방까지 찾아드는 소식이었다. 


- 208,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아! 평범한 일상사에 예기치 않은 맛을 보태주고 습관을 미래의 구상으로 둔갑시키는, 둘이서만이 맛볼 수 있는 행복의 속도!


- 210,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네, 나도 이해해요,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그 한심한 물건들마저 없다면 그에게 뭐가 남겠어요? 가족도, 친구도, 직업도 없고 심지어 기르는 짐승조차 없으니. 그저 있는 거라곤 그 장난감 같은 물건에서 느끼는 달콤한 환상뿐이거든요. 저 여자가 저녁에 자기 방에 돌아가 잔뜩 쌓인 종이 상자들과 널려 있는 담배개비들과 후회와 텅 빈 냉장고 사이로 꿈꾸듯이 빙빙 돌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해요.]


- 231,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사실 말이지만, 나는 잘 아는 길인 줄 알고 접어들었다가 어느 순간 그만 자신이 없어진 그런 사람과 같은 사정에 놓여 있답니다. 그래 지금 나는 잘못 들어선 길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는 팻말을 찾고 있는 격이지요. 나는 아직 나이가 젊습니다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어떤지에 의혹이 생겨서……]


- 245,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서로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표현하게 되는 유머가 (특히 따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마음 속에 감춰져 있던 어떤 계획, 망설이며 말하지 못했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내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저 우연히 건넨 재미있는 말이려니 했던 것으로 인하여 새로운 균형 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 263,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우리는 소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부자더군요. 우리들 속에는 한없이 많은 것이 들어 있어서 그냥 좀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행복한 공감으로 이해만 하면 우리를 흡족하게 해줍니다.>


- 266, 피에르 키리아, 고독의 피에로 








=

사랑과 일과 고독에 대하여 총망라한 작품,

아름다운 여자도 아니고 사랑을 맺어 주는 건 행복한 공감과 책임, 혹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그 누군가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의혹,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전환





앙드레 셰디드  -피리 



=

섬짓한 미소, 다중적인 사람의 면모, 좋은 것보다는 나쁜 기억을 확대, 과장해서 기억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말들로 순화시키려 해봤자 그 이중성은 가려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다. 





크리스티안 바로슈, 오르샹 가를 기억하는가



이것 봐, 마리안,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어느 의미에서 나는 그걸 후회해. …… 만약 내가 통곡이라도 할 정도로 사랑의 아픔을 잔뜩 느낄 수라도 있었더라면, 너를 죽여버리거나 아니면 강제로 욕이라도 보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라도 되었더라면 무슨 효과라도 있었을 것이고 너한테서 헤어날 수도 있었을 거야. 슬픔은 마음을 씻어내주거든. 정말 미친 듯한 사랑은 얼마나 망각을 위해서 좋은 준비가 되는지 몰라. 


- 295, 크리스티안 바로슈, 오르샹 가를 기억하는가



시간이 가면서, 아니 시간을 잃으면서 나도 깨달은 것이다…… 나는 혼자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선택하는 것이 옳지 당하거나 남을 강요하도록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도록…… 특히 어떤 사람을 소유하지 않도록.


- 303, 크리스티안 바로슈, 오르샹 가를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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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마지막 구절, 

진심으로 후회없이 한 사랑엔 후회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한다. 





레몽 장, 벨라 B의 환상



그러나 이제는 잘 익어 벌어진 과일처럼 갈라진 붉은 반점의 상처에서 아주 조그맣고 까만 거미 세 마리가 나와서 벨라의 핑크빛 화장가운 위로 기어가기 시작하는 광경을 보자 사람들의 법석은 더욱 요란해졌다. 


- 329, 레몽 장, 벨라 B의 환상





=

충격적인 결말, 상상은 단지 상상일 뿐, 지켜보는 누군가는 그 진실을 알 수없다거나, 

혹은 상상이 낳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 





르 클레지오, 매혹 



그 여자는 언제나 그 똑같은 엉뚱한 자리에, 트럭들과 자동차들이 부르릉대며 지나가는 지옥 같은 대로변에, 그 복도의 잔혹한 추위와 고독 속에, 거대한 건물들 발치에, 감옥 건물들에 에워싸인 텅 빈 마당으로 바람을 쏘이러 나온 죄수들처럼 잠시 동안 지하실의 환기창 밖으로 나와 서 있는 유령이었고 혼령이었다. 나에게 그 여자는 벌써부터 마술과 신비에 싸인 하나의 꿈이었고 혼을 빼앗아가는,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그러나 일체의 현실적인 삶으로부터 쫓겨난 하나의 이미지로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 슬픔과 비밀을 지닌 존재였다. 


- 345, 르 클레지오, 매혹 



내가 뒷걸음질을 치는 동안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구멍의 그림자가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깊이 패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처음에는 건다가 나중에는 점점 더 빨리, 정신없이, 숨을 헐떡거리며, 대로의 포도 위에 부딪치는 내 발소리가 머리에 반향되어 울리는 가운데 마구 뛰었다. 


- 347, 르 클레지오, 매혹




=

책임 질 수 없는 관심은 일절 내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엔 도망 갈꺼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생각나는 작품

얼마나 무책임한 감정의 흘림인가!

그렇게 때문에 관심이나 고백은 지속성을 장담한 책임을 동반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