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2, 종로피카디리 파스텔화의 예쁜 그림으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칙칙해져 있던 저의 마음을 밝고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마당으로 나가고 싶은 암탉은, 밥을 굶어 뱃속은 텅텅비어버렸지만, 마음속만은 마당으로 나가겠다는 꿈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을 낳는 암탉은 양계장이라는 세계에서 나오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습니다. 막상 나온 마당 세계는 그녀가 동경하던 누구나 환영해 줄 것 같았던 평화로운 세계만은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누구에게나 서스럼이 없이 다가가고 언제나 밝은 암탉은 마당에서 내몰리고 비록 그녀가 좋아하는 나그네가 아름다운 짝이 있는 걸 알고 아파하지만 그리고 그토록 좋아했던 나그네 마저 잃고 말지만 그 모든걸 마음 속에 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암탉은 그녀의 품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암탉은, 참 마음도 넓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싫어한대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르면 어때, 달라도 사랑할 수 있어!!!"
좀 다르면 어때,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닮은 구석 하나 없으면 어때요, 내 아가인 걸요.
그쵸, 조금 다르면 어때요,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 같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 걸요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기억이나, 그러니까 외롭지 않아."
늪에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이 찾아와 암탉은 다시 한번 이별을 하게 됩니다. 무언가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인지요.
비록 함께 할 순 없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며 처음엔 울다가 그 다음엔 견디고 그리고 언젠가 아픈 기억마저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억해 낼 용기를 얻는 것이 삶이 아닐까요,
"가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자신의 꿈을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겼던 암탉은 누구보다도 그녀의 아가가 품은 꿈을, 그리고 그 꿈으로인해 벅차오르는 가슴을 알고있었을거에요. 그렇게 암탉은 부리가 깨지고 피가 나도 활짝 웃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아가를 떠나보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품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 품고 있는 꿈을 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먹어, 네 새끼들이 배고프지 않게."
영화의 초반부터 그녀의 주변에 가슴 아픈 사건을 일으키는 족재비가 있습니다. 그 족재비로 인해 잃은 게 더 많은 암탉은 , 어느 겨울 무덤가에서 발견한 굴 속에서 발견한 동물의 새끼들을 누구의 새끼인지도 모른채 단지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그 아가들을 품에 품습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그 어떤 생명체로 나쁘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려가며 암탉의 목을 물어야했던 족재비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해하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달이 차오르면 족재비가 배가 고파 사냥을 한다고 나그네가 말했듯이 그들은 정말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합니다. 사람들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야 사냥을 합니다.
그 누구도 나쁘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 젖을 찾는 새끼들을 본 암탉은 족재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제가 어린 시절 살던 마을엔 해마다 철새가 찾아왔습니다. 해질녘이면 온갖 철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온 동네가 부산스러웠답니다. 수 많은 새들이 떼를 지어 찾아오는 그때 초록빛을 띈 유난히 예쁜 새가 있어 아빠에게 물어본 기억이 영화를 보면서 되살아 났습니다.
"아빠 저 새는 뭐야? 머리가 초록색이야!!" "응~, 저건 천둥오리여~~" "천둥오리? 우와 예쁘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는 석양' 이라는 표현에 '서산은 바로 옆 동네인데...' 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산이 참 유명한 동네라고 생각하던 그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되찾은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가며 얼마나 중요한 것들을 머릿속에 넣고 살고 있던 것일까요,
그 시절 장관을 이루던 천둥오리 무리들은 이제 더이상 요란스럽게 자신들이 왔음을 알리지 못합니다. 기세 등등하게 날아 다니며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수 많았던 새들이 이제는 그 수가 너무 줄어들어 아무리 힘차게 소리쳐봐도 우리 집 마당까지 닿지 못하고 처량하게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그들의 작아진, 혹은 사라져가는 소리와 같이 그들마저도 쓸쓸하게 그 먼 길을 찾아오다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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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수웠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