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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수웠던 날들

[산행] 눈 덮인 불암산 새해 첫 산행

by 살랑상아님 2013. 2. 14.

구정이라는 건 일제가 우리나라 전통의 설을 없애기 위해 격하시킨 말이라고 하더군요

그리하여 신정과 구정 사이를 신년으로 인식하지 않고 로딩하다가 드디어 

설을 맞이듯합니다.

크하하핫 


새해는 꼭 겨울산에 가보겠다며 아이젠도 없이 겁도 없이 눈이 덮힌 불암산으로 향합니다. 

자박자박 미끌 자박자박 미끌 


스틱은 정말 좋군요, 네 다리로 요령껏 걸어보니 제법 재밌습니다. 


아이포토에 도취되어 사진 리사이징은 생각하지 않고 선명도를 너무 높였네요, 거슬리시면 클릭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마주친 강아지 둘과 어머님

그 뒤에 오시던 아버님께서 제게 인사를 건넵니다.


"어이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헤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산을 다니시는 분들은 서스럼없이 인사를 건네십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인사를 한다고 해서 "뭐야." 하는 솔굉이 같은 분들은 드문게 또 산사람들이죠.



나무 앞에 사람은 참 작습니다. 



사람이 지나 간 길


아무래도 둘레길을 제외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의 새해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바로 !! 


저인듯 하네요 :) 




새순이 돋았어요.


봄봄봄 봄이 왔어요, 눈이 쌓였어도 봄은 봄입니다. 

봄이 드디어 !! !




이 의자는 고비입니다. 

이 의자를 보고 저희 이모도, 친구들도 모두 앉았다가 바로 내려가려고 들기에 이 의자는 고비의자입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턱까지 차던 숨을 고르고 잠시 멀리 서울 하늘을 바라본 뒤 

척척척척 바위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말이죠.


이날 저는 영광스럽게도 불암산의 첫 방문객으로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들국화 형님들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전 계곡길을 더 좋아하지만 

계곡길을 흐르던 물이 빙판을 만들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여 능선길로 향합니다. 

능선길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밤새 내린 흰 눈이 제 발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찌됐을지 아찔하네요.





그렇게 네 다리의 짐승이 되어 재미지게 산을 오르던 그녀는 

밝아오는 햇볕에 

순간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올라왔습니다. 





새해 첫 겨울산행이고 첫 방문객이니까 정상까지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이모님댁에 고이고이 옷을 접어두고 비장한 각오로 왔다손 치더라도

적정선에서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며 

능선길 어느 지점에서 멈춰섭니다. 




그리고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는데 

다 흔들려서 건질 것이 없네요 힝 


잠시 나무에게 가방과 스틱을 맡겨두고 

쁘띠 시산제를 지냅니다. 


크헤헷 

라면은 못 먹었어요, 젓가락이 없더라구요.


저희 엄마께서 이 바보다 그럼 나무를 꺾어서 젓가락으로 쓰면 되지.

라고 하셨지만 전 나름대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절대 그런 잔인한 짓은 ㅠㅠ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내려오는 길 

감동 또 감동

어느 지점에서는 지금 하산길에 해가 뜨기도 하네요 

그렇죠,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능선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을때 

아이젠을 장착하고 척척 올라가시는 아버님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저는 그만 하산하고 있습니다.


산을 다닐 땐 보통 앞사람이 간 발자국을 따라 밟게 돼요.

왜냐하면 그게 안전빵이거든요 ㅋㅋㅋ

무엇보다 겸허하게 앞사람의 발자국을 살피며 어느 길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인지를 배운달까요.


아버님 제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올라오셨네요, 으하하핫 


뿌듯해라 -ㅅ -




이곳은 성암동산입니다. 


어느 분께서 이곳에서 한동안 칩거하셨다는데 


늘 올때마다 신기하고 부럽고 저도 어서 그런 용기가 생겨 산 속으로 숨어들어야할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곳입니다.




자고 일어나 저 바위 너머로 햇님이 인사를 건넸겠죠?




사철나무 

초등학교에 정말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너무 반가워 


눈 덮인 하얀 겨울 너의 앙증맞고 푸르른 잎은 참 귀여미 귀여미 



하트도 그려봅니다.

물론 보낼 곳은 없습니다. 

상아가 상아에게 하트하트



반짝이는 눈

나뭇가지에서 살포시 땅으로 내려오는 반짝반짝 예쁜 눈들 

그 모습을 어찌 다 담을 수 있을까요


제 눈을 통해 제 마음 속에 소중하게 담아왔답니다. 




복.

여기가 바로 그 계곡입니다. 

스틱으로 헤쳐보니 빙판이 심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나 복.이라며 낙서를 하고 밍기적 거리다가 



한 발자국 내딛은 순간 

처참하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워 나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빙판이라 미끄러져서 바위에 얼굴을 부딪혔는데 

빙판이라서 얼굴이 그나마 덜 다쳤네요 ㅋㅋㅋ 


빙판 아니었으면 제 얼굴 다 나갈뻔했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다며 ㅋㅋㅋㅋㅋㅋ


진짜 허우적 거리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네요. 


삶에 대한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정상에서는 들리지 않던 물소리 

어디에서부터 녹아서 흘러왔을까요.

자연은 참 신기해요.







누군가가 낯모를 불특정다수를 위해서 

길을 쓸어주셨어요.


그 마음 그 고운 마음 그 고마운 마음 



약수터엔 고드름도 수정고드름

디카 배터리가 없어서 간신히 간신히 찍었네요:)


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본 듯한 시.

아, 그러고보니 대학시절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시간에 

누가 윤동주를 모함했나 라고 하며 시인에 대한 리포트를 쓴 적이 있네요 :) 

지금도 가지고 이쎵 ㅋㅋ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그땐 몰랐는데 

다시 그 사이나 미워져 돌아가고 

그 사이가 가엾어져 도로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을 이제 나도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 했네요.



불암산 초입에 있는 놀이터

스노우볼이 너무 예뻐서 찍었는데 

역시 배터리가 없어서 <<< 

발샷이네요 ㅋㅋㅋ

근데 정말 예뻐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전 날 이모님 댁 아파트 화단에 핀 꽃.

이 추운 겨울 꽃을 피운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서성였어요.


오늘은 눈이 쌓여있어 호호 불어 눈을 털어내줬어요.

추위에 굴하지 말고 활짝 활짝 피어나려므나! 



제게 먼저 인사해주신 멋진 아버님 덕에 

산에서 마주친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건넬 용기를 얻어 신나게 인사도 하고 즐겁게 산행을 했네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스틱으로 어떻게 버텼지만 

정상까지 오르지 못한 것과 퉁퉁 부워오른 광대뼈의 상처딱지를 보고 


아이젠을 구입했습니다. 


으하하하핫

장비가 있다고 방심하지 말긔, 

풀셋 갖춘 분들이 되려 방심으로 인해 사고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여튼 산에 가요 산에!! 


겨울 산의 청량감과 산에 오르는 재미는 타 겨절을 뛰어 넘네요 

사실 산을 다닌지 나름 3년 차지만 겨울 산을 본격적으로 올라 본 건 처음인데, 와, ㅋㅋㅋ


눈이 다 녹기 전에 어서 산에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