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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미에게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뭐가 괜찮을 거라는 거죠?"라고 묻는다. 나는 "뭐든 너를 울게 만드는 일 말이야" 하고 대답한다. 그녀는 그래서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괜찮을 것이라서. 세계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서. 모든 것이 괜찮으니까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음속 진실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서. 그냥 자리에 앉아서. 괜찮은 상태로 있을 만큼 괜찮아서. 우리에게는 시가닝 얼마 남지 않았고, 언젠가 미래에는 괜찮지 않은 때가 올 거라는 사실을 모를 만큼 괜찮기 때문에.
가끔 나는 태미가 걱정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그녀가 이 모든 일에 지쳐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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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작은 주머니 공간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내가 찾을 수 있는 시간축 위의 좌표 중 가장 사건 발생이 드문 곳이었다. 매일 밤 정확하게 똑같은 이람ㄴ 벌어지는 곳. 완벽한 무음. 절대적인 무. 내가 이곳을 고른 이유이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곳에서는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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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슬픔이라는 상수를 가진, 도달할 수 없는 탈출 속도에 이르는 방정식이었다. 이 방정식에는 수많은 변수가 들어갔고, 그 변수들은 상자에, 우리들에게, 아버지에게 깊게 새겨졌다. 아버지는 완벽한 상자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가능성 공간을 항해하는 탈것, 행복이든 뭐든 아버지가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상자에, 상자 속의 상자에, 수많은 상자들 속의 상자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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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수학과 물질의 성질 따위나 난해한 주제에 대한 딱딱하고 재미없는 전공 서적들 옆에는 현실화, 구체화, 실현, 성찰 등을 약속하는 자의식이 뚝뚝 흐르는 붉은색 제목을 가진, 독자를 구제 가능한 레몬이나 구조적 문제, 목록의 실현 대상이나 고쳐야 하는 습관의 총합, DIY 제품으로 취급하는 그런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독자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기는 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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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그립지 않다. 보통은 그렇다. 나도 그리워하고 싶다.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는 말은 진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실이며,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시간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져가버리고, 그 자리에 이해만을 채워 넣는다. 시간은 기계이다. 시간은 고통을 경험으로 바꾸어놓는다. 순수한 정보를 가져다 편집하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놓는다. 우리 삶의 사건들은 기억이라고 불리는 다른 물질로 변형되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들은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편집되지 않은, 가공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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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하루 일을 끝마침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침에 일어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그 사이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볼 수 있다. 그가 어떻게 희망 찬 하루를 시작했는지, 어떻게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는지, 어떻게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지, 어떻게 그가 이미 알고 있는지…….
- 94
나는 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간 속에서 살가는 느낌이라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는 일, 절벽에서 아래로 암흑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일, 놀랍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갑자기 착륙하는 일. 그리고 이어지는 매 순간순간마다 그런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일. 매 순간마다 추락한 다음 다시 기어올라와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 일. 나는 이 윙우잉대고 흐릿한 풍경, 잠만경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의식, 내 자신의 삶을 누리는 것의 마찰력과 견인력, 그 삶의 소모를 거의 그리워했었나보다.
- 101
이럴 때, 딱 맞는 시간에 딱 맞는 음악을 듣게 될 때면, '이 음악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우주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 존재르 ㄹ느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특별한 우주 말이다. 보통의 우주보다는 낯설지만 훨씬 더 나은 곳. 바이올린 소리에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이면서 그 우주의 느낌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그곳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미 그 특별한 우주에 살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것뿐인지가 궁금해지게 된다.
- 132
나 혼자 남아서 시간을 벗어난 침묵 속에서 떠돌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을, 모든 존재를 나로부터 밀어내는 것. 나는 언제나 이런 일을 저질러 버린다.
- 147
'온 마음을 다한다'라는 표현은 대부분 별 의미 없이 사용되지만, 어머니의 경우에는 완벽하게 정확한 묘사일 수 있다. 어머니는 머리나 언어, 생각, 사고, 감정 등, 다른 사람들이 사랑이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도구나 물체나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만으로 사랑을 했다. 어머니는 사랑을 전달하는 물리적 수단으로 자신의 마음을 사용했고, 그 결과는 중력이나 시간이나 시간 여행이나 SF의 법칙 그 자체만ㅇ큼이나 무작위로 작용했다.
- 177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하며, 내 안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끄집어내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을 무시하며, 나는 전 생애를 홀로 보내려 하고 있었다. 나는 문을 찾아 달리고 있는 중이다.어던 문이든 상관없다. …… 잠겨 있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힘껏 흔들어본다.
- 183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럼 심장부터 만들어. 두 개 만들어. 그리고 두 번째 심장을 휘둘러서 첫 번재 심장을 조각내버려. 징그럽지? 자, 끈적한 피투성이 웅덩이가 생겼어. 그걸 잘 들여다보면서 이해하려고 해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야. (중략) 거울을 봐. 네가 너라고 확신할 수 있어?
- 195
너는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모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버전의 네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봐. …… 모든 변화, 네 모든 부분의 진실을 말이야. 우리는 자신을 부분으로 나누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자신으로부터 숨기 위해서. 너는 자기 자신이 아니야. 너는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이 아니야. 너는 자기 생각보다 훨씬 큰 존재 훨씬 복잡한 존재야. 너는 너라는 단 하나뿐인 존재의 하나뿐인 부분이야. 네 생각보다 더 적은, 더 많은 네가 존재하지. 백만 명, 500조 명일 수도 있어.
- 197
엄마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내 자신이 아빠의 축소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엄마는 더 크게 울기 시작하고, 나느 ㄴ엄마도 당신이 왜 우는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구멍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도우려 하나 누구도 그녀를 꺼내지 못하고, 결국 한 명씩 그 자리를 떠나게 되는 내용이었다.
- 226
아버지는 고통 때문인지 기쁨 때문이지 모를 소리를 지르더니 나를 껴안으셨다. 분필으 허공으로 던지고 박수를 쳐서 엄청난 분필 가루 구름을 만들었고, 위아래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다양한 바보짓을 벌이며 뛰어다니셨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 과학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모습, 행복한 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 234
당신은 당신 자신이 가게 해주는 장소에만 갈 수 있습니다.
- 238
우리는 평생 동안 우리의 진짜 모습을 찾지 못한 채로, 자신이 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회피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고, 일생 중 단 며칠 동안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253
가장 부끄럽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운 나쁜 상황 속에서도, 그래, 실패 속에서도 (중략) 그런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버지가 나를 언제나 세계로부터 지켜주려고, 나와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완충재가, 보호막이, 나를 숨겨줄 수 있는 상자가 되어주려고 하셨다는 사시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 265
나는 이제 서른 살이다. 아버지는 실용적인 분이셨으므로 당연히 이 키트도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그 사실 때문에, 아버지가 나를 위해 이것을 사셨다는 사실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품게 되는 것 같다.
- 291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며 이 타임 루프를 돈 것이 ㄷ체 언제부터였을까? 계속해서 같은 장소를 방문하며, 거기서 뭔가를 배워서, 내 앞의 이 광경을, 우리 집 부엌의 단면을, 방 하나의 작은 모형을, 모든 종류의 나쁜 일이 벌어졌던 장소를 해석하기 위하여, 내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쓴 것일까? 내가 항상 자신에게, 자신의 삶에 저지르는 일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렇게 내 기억의 같으 부분에서 언제나 머무르고, 뒹굴고, 생각하고, 닳아서 약해지게 하는 일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왜 나느 ㄴ항상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지금까지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 296
"하지만 덧붙이자면요, 저는 사용자 입력 기반 역학 피드백 루프 인격 형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그 말은 내가 나 자신하고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군."
- 314
시간과 위험과 상실이 존재하는 세계로 다시 나갈 것. 텅빈 공간으로 나갈 것.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현재를,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적든 많든 원하는 만큼 수용할 수 있는 현재를 만끽할 것. 현재를 늘이고, 그 안에서 살아갈 것.
- 332
타임루프를 돈다는 것은 곧 자신이 그 불행의 기억들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
과거 속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듯,
생각 안에 갇혀버린 것과도 같지 않을까,
문득, 아버지께서 그 기계의 원리를 설명하다가 우리 모두가 타임머신이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났다.
우리는 모두 제 각각의 타임머신인데 단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뇌에서 그 것이 관여하는 부분이 퇴화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방법을 잊게 된 것이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에 유가 말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그 모든 기억을 지고 가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시간에 의해 기억이 이해되고 흩어진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버지에 대한 회고, 어머니엔 대한 회고, 자신에 대한 회고
이 모든 과거의 기억 속에서 방황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 덧붙이기
스스로에게 갇혀버리길,
무의 세계는 나빠질리 없지만 좋아질리도 없음을
나빠지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행복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들을 놓아버릴 순 없는 거니까
정글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
여튼 대단한 책이었다'ㅡ'
읽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비록 발췌한 구절에 있는 오타가 무슨 단어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정말 대단하다
그러고보니 도서관에 가면 오래 전에 읽었던 "쾅, 우주에서 몇 만 광년!"이라는 책을 마주치곤 하는데
이 책이랑 혼돈해서 오늘에야 비로소 독후감을 남길 수 있게 된 듯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