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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수웠던 날들

유치원 졸업식

by 살랑상아님 2011. 8. 18.

일곱살 고운 한복 입고 유치원 졸업하던 어느 추운 겨울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다섯살 된 남자아이 하나가 사라졌다.

 

사흘 밤낮을 찾아도 나타나지 않던 아이는

해마다 철새 들이 찾아와 쉬어가던 그 물웅덩이를

포크레인으로 하루 종일 파내고 나서야

얼마나 추웠는지 가뜩 웅크린채 시퍼런 주검이 되어 나타났다.

 

 

누가 알았을까

그 조그마한 아이가

그 맑고 해맑은 아이가

죽음을 택했을거라고

 

 

동생을 잘 돌봐야한다

그게 누나가 할 일이라고 배웠다.

당황한 어른들은 동생을 돌보지 않은 누나 탓이라고 했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7살 짜리 여자아이의 탓이라고 했다.

 

아이는 울었고

부모님도 울었다.

 

모두가 너무 슬퍼서 여자아이에게

그건 사실 네 탓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탓이다 괜찮다

말해주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서부터 생각했다,

그 죽음의 주인공이 자신이 됐어야 했다고

차라리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그런 생각을 품은 아이는 웃지 않았다,

매일 울었고 매일 자신을 탓하다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밥을 먹지 못했다.

먹은 약마저 물마저 토해냈다.

 

그 가슴에 맺힌 아픔을 뱉어내려는 듯 아이는 모든 걸 게워냈다.

 

 

당장 죽어도 누구하나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삶

그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고 사라질 수 있는 삶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아파야 한다면

아플일도 아픔을 줄 일도 없도록 멀리하고 멀리하고

고립되길 바랬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차에 부딪혔다.

 

찰나의 순간 어둠을 보았고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을 삶, 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적당히 방관하고 적당히 존재를 느끼다

적당히 사라져도 찾지 않을 수 있길 바랬다.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않았다.

집에서도 없는 사람처럼, 될 수 있으면 떠돌았다.

 

미워하고 원망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끝내 가엾은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어

죽은 동생의 삶까지 두 사람의 몫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생이 허락한다면 되도록 일찍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면 40까지만 살고 싶었다.

그만 하고 싶었다, 삶이 라는 것

 

 

언제나 죽음을 꿈꿨고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살았다.

 

언제나 누군가 손을 잡아주길 바랬지만,

누군가 손을 내밀면 쳐내버리고 말았다.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19살이 된 아이는

또 누군가를 잃고 매일매일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지 않겠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가족이 어디있나

손을 쳐내도 잡고 싶은 그 마음 외면할 만큼 강하지 못한 걸

 

 

정말 강한 삶을 사는 것은

외면하고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떠나보낼 줄 아는 것임을

 

그 모든게 내 탓도 아니고, 내게 내린 벌도 아니라

 

오로지 나를 강하게 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스무살이 돼서야 깨달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쉽게 봤다,

그냥 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죽음 역시 책임이 따른다.

내가 내 자신 밖에 못보던 그 때도

 

나는 행복했고 즐거웠고 밝았고 유쾌했다

 

죽음을 생각하느라 행복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행복은 생각하지 못하는 새에 스며들어

날 웃게했고

 

나는 지금 행복을 생각하느라

다른걸 생각할 수가 없을만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ㅇㅇ


단 한 사람도 아프지 않게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삶이란 없다.

그저 누군가의 삶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