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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수웠던 날들

연애를 못하는 이유

by 살랑상아님 2018. 5. 25.

2011년 이후 나는 연애를 못하고 있다. 

어쩌면 안 하고 있다는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측근의 말을 빌면 항상 '썸녀'였고, 친구들은 늘 나의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그간의 '썸'에 대해서 줄줄이 늘어놓으면서도 그 순서는 헷갈려하곤 하니까. 


결국 '썸'으로 끝나는 이유는 

'너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느 순간엔 '너'를 잊을 정도로 좋아했다가도 금새 정신을 차리고는 '너'라는 절대적 잣대를 들이 밀어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아마 '상황을 만들어버리는'게 맞는것 같다. 미필적 고의랄까. 이렇게 상대방을 시험하는데, 상대방도 내가 마냥 좋을리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도 머리가 있는데, 그런 집요한 모략에 맞서는 사람은 이 시대의 바보멍청이일지도 모른다. 


세상 온갖 이유를 다 가져다 대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이거나(그렇다고 애인이 있거나, 유부남은 절대 아니지만)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그러니까 사귀게 되려는 찰나에 도망쳐버린다. 


'나보다 꼭 좋은 사람 만나야해.' 이런 말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부족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데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이젠 그 말을 써먹으니까. 물론 꼭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는 하지 않지만 


'너만 내 곁에 있었어도'라고 너를 원망했던 날들이 있다. 

33살 이후론 그 '썸'조차 타지 않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 누군가를 만나려 시도할 때마다, 그 시도를 헛되이 마무리 지을 때마다, 

'너만 내 곁에 있었어도.' 내가 이렇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진 않았을텐데. 


너를 만났던 2010년 나는 정확히 자존심 쎄고, 유별나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집앞에 찾아오는 남자들이 꽤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장관리'랄 것도 없이 그냥 내 성질대로해도 때가되면 연락하고 찾아오는 남자들이 몇 명이 있었고, 당시 나는 그 젊은 패기에 '기쁨조'들이라며 그들의 존재를 꽤나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전후 사정없는 스토리는 없으니 그냥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자. 


너를 만날 때도, 그랬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아는 오빠'에게 널 만날지 말지 고민을 상담했다. 

너를 만났던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지만 애석하게도 너는 약 한달 반 뒤면 한국을 떠나야했었으니까. 

그 아는 오빠는 '야 어차피 네가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 어차피 한달 반 넘게 진득하게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했고, 

'아, 하긴..'하면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너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네가 떠난 한달 반 후, 나는 여전히 타이밍 좋게 연락 해 오는 기쁨조들을 만나 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사랑'에 대해서 인지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 이전에 만나는 누군가가 시시콜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뭐야, 연락이 없네, 그럼 됐어.'하고 성화를 부리곤 했던 내가 

네가 연락이 없는 건 '그러려니' 피곤한가보다. 뭐하고 있나보다. 하면서 이해하게 됐고, 

네가 무얼 하든, 네 노트북에서 얼핏 여자가 있는 실루엣의 사진이 스쳐보여도 '뭐 그래봤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같이 보기로한 영화를 나는 나의 지인과, 너는 너의 절친과 각자 보러 간 자리에서 마주쳐도 

그저 좋아서 '결국 같이 영화를 보고 있네.', '우리 이렇게라도 봐서 정말 좋다.' 하면서 속없이 헤헤덕 거렸고, 

친구들이 너랑 보기로 한 영화를 절친이랑 본 거 아니냐면서 노발대발해도, '우린 운명처럼 만난거야'하면서 반짝반짝 눈빛을 빛냈다. 


딱 한 번 성질을 낸 적이 있는데, 만나기로 한 날 네가 데리러 올 기미가 안 보였고, 걸려온 전화에 '어디야?'했는데 '집이야'라는 네 대답에 '더이상 할말없어. 끊어.'하고는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너는 '네 집 앞이야'라면서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는 또 히죽거리면서 나가서 화내서 미안하다고 난 집앞인 줄 몰랐다고, '상아, 무섭네.' 하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비면서 내 손을 잡고 안아주는 네게 기쁘게 안겼다. 


정말,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분명 언젠가 만날 거라는 확신이 든다. 


명상을 하면서 너를 만났다. 

너와의 기억들을 되짚는 날에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른채 

나의 손끝과 발끝이 모두 각성되어 기쁨으로 가득 찼다가, 종국엔 슬픔으로 가득 찬다. 

너는 지금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주전자의 김을 보며 우리가 함께했던, 그 겨울 '호호'불던 입김을 떠올리곤 한다. 

너는, 너의 하늘을 바라보고 우리를 떠올린다. 

내가 그러하듯 


자존심이 쎘던 나는, 그때의 나는 너와의 연결로를 모두 차단해버렸다. 

나의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후회가 될지 까마득하게 모르는 상태로 


너를 닮은 아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약 한달 전 꿈에는 나의 숨겨놓은 딸아이가 꿈에 나왔다. 

그 아이는 정확히 너와 나를 닮아, 그토록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를 꼭 껴안으며 나는 너를 떠올렸다. 


이쯤되면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그 집착이라는 행동을 하진 않았다. 

나는 다만, 너를 추억하고 너를 기억하고, 몇몇 사람들을 너와 비교해가며 탈락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늘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나는 분명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비록 네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 말을 할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