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14

하늘보기 어린 시절 시골의 밤 길엔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다. 가로등이 없는 나무 아래를 지나갈라치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서 흐린 날에도 하늘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구름이 낀 밤 하늘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숨은 파란하늘과, 찬란한 햇님과, 반짝이는 별이 있음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12. 1. 19.
유치원 졸업식 일곱살 고운 한복 입고 유치원 졸업하던 어느 추운 겨울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다섯살 된 남자아이 하나가 사라졌다. 사흘 밤낮을 찾아도 나타나지 않던 아이는 해마다 철새 들이 찾아와 쉬어가던 그 물웅덩이를 포크레인으로 하루 종일 파내고 나서야 얼마나 추웠는지 가뜩 웅크린채 시퍼런 주검이 되어 나타났다. 누가 알았을까 그 조그마한 아이가 그 맑고 해맑은 아이가 죽음을 택했을거라고 동생을 잘 돌봐야한다 그게 누나가 할 일이라고 배웠다. 당황한 어른들은 동생을 돌보지 않은 누나 탓이라고 했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7살 짜리 여자아이의 탓이라고 했다. 아이는 울었고 부모님도 울었다. 모두가 너무 슬퍼서 여자아이에게 그건 사실 네 탓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탓이다 괜찮다 말해주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서부터 .. 2011. 8. 18.
공릉동 또리가 자기 베개가 없다며 이모하고 얘길하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외할머니 댁에서 지낼 적 할머니께서 사준 메밀베개가 떠올라 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빨래를 걸면서 몰래 눈물 훔치다가 빨래통 속에 들어있는 그 베개를 발견했다. 벌써 10년은 됐을 메밀 베게를, 할머니는, 손녀 딸 언제 올까 생각하시며 내가 갈 때마다 신기하게 나와있었던 그 베게가, 태연하게 빨래통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가 어젯밤에 소주한잔 하시면서 "나, 이제 홍성은 못가겠더라." "할머니 생각나서요? 저도 지나갈 때 그렇던데.."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저려.." 모친을 잃은 자식의 마음을 나는 아직 모르니 내 마음도 저리고 찢어질 것 같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공릉동은 나랑 무슨 인연으로 참, 두 사람을 비슷.. 2011. 8. 15.
음악 음악은 그 누군가를 기억해내는데 촉매가 된다. 그러니까 무뎌질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질릴 때까지 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잊었다가, 어느 순간 문득 흔히 들을 수 있는 유행가도 아닌데 어느 구석진 커피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불현듯 귓속을 파고드는 그 음 하나하나에 내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바로 그때의 나로, 그 누군가와 함께였던 때의 나로 돌아가게 들어버려 ㅡ 추억이 있어 참 촉촉한 나날들 ㅡ 2011. 7. 12.